1. 목차 및 개요
오늘 공부할 문헌정보학개론(김수경 외, 2024, 태일사)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2장 ‘도서관의 발전과정’은 아래와 같이 3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다. 단, 우리나라 도서관의 발전 부분은 해방 이후에 한한다.
1. 도서관의 역사(서양의 도서관, 동양의 도서관)
2. 우리나라 도서관의 발전(우리나라 도서관의 역사, 도서관 관련 법령 및 정책의 발달)
3. 도서관 발전의 의미(도서관의 정의, 변화하는 도서관)
문헌정보학은 본래 도서관과 사서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립된 학문으로 도서관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이하에서는 동양, 서양 및 우리나라 도서관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통해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화된 도서관의 모습을 살펴본다. 아울러 오늘날 도서관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이 컴퓨터와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하여 처리되고 있지만, 이러한 기술 변화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도서관이 지녀온 고유한 문화적, 사회적 역할 즉, 이용자들이 자신의 교육/정보/오락/문화 요구에 합당한 다양한 정보매체들에 접할 수 있게 하고, 이를 제공해야 하는 책임과 역할은 결코 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강화되어야 할 것임을, 도서관의 역사적 의미와 사명 속에서 되짚어 본다.
2. 내용
최초의 도서관이 어디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도서관은 기원전 3천 년경 수메르인들이 메소포타미아에 세운 사원도서관이다. 그곳에는 수메르인들이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새긴 거래증서, 쐐기문자 교과서, 수학서, 기도문 등의 기록물들이 보존되어 있었다.
“파피루스의 집”으로 불리는 고대 이집트 초기 도서관에는 행정, 의학, 점성술 등의 파피루스 기록물들이 소장되어 있었고, 테베에 위치한 람세스 2세의 도서관에서는 이만여 개의 파피루스 롤이 소장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문명을 꽃피운 도서관은 기원전 3백년경 지중해 알렉산드리아에 프톨레미 1세와 그의 아들에 의해 건립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 전성기 때 약 50만 개에 달하는 파피루스 롤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곳에서 학자이자 사서였던 칼리마쿠스가 도서관사에서 최초로 체계적인 자료 목록인 피나케스 목록을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원 후 4세기 경 로마에는 29개의 공공도서관이 건립되어 있었으며, 다만 아직까지 자료를 빌리는 것은 대단히 특수한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고, 이용자도 글을 읽을 수 있는 부유하고 교육받은 소수의 매우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로마제국의 몰락 이후 도서관의 명맥은 기독교 수도원에 의해 유지되었고, 기원후 529년 이탈리아 몬테 카시노에 건립된 베네딕트회 수도원 도서관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 각 수도사들은 매년 하나의 책을 지정받아 공부해야 했으며, 스크립토리움이라 하는 필사실에서 종교 텍스트를 필사하는 일이 일과 중 하나였다.
중세 후기엔 대성당 부속 도서관들이 만개하였고, 이후 옥스퍼드, 캠브릿지 등 대학 도서관으로 이어졌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 발명은 르네상스(문예부흥)으로 근대를 열었고, 대량 인쇄가 가능해지면서 종교서 외에 학술서, 행정서 등 각종 지식의 폭발적 확산이 일어나는 동시에 이들 출판물을 조직하고 정리하기 위해 새로운 자료 조직방식(목록, 분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7-19세기엔 국가도서관들이 경쟁적으로 설립되었고, 국가 내 모든 지적 기록물들을 빠짐없이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노력은 국가 납본제도의 법제화로 나타나게 되었다.
중국의 도서관 발생 시기는 기원전 3천년경으로 추정되며, 주나라 때에는 서적을 관장하는 관리들이 장서를 분담하여 문헌을 정리, 편목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200년 즈음 채륜에 의해 종이가 발명되면서 지식의 기록과 보존이 한층 용이해졌고, 한나라의 성제는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피해 숨겨진 자료들을 수집해 중국 최초의 해제서지인 칠략을 완성하도록 했다.
중국 근대 도서관의 발전은 청나라 말기 지식층들이 문예진흥을 주장하며 장서루를 창설하였는데 이는 영어 Library의 중국어 번역어로, 1,900년대 이후에는 도서관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1900년대 초기에는 성립공공도서관들이 각 성에 출현하기 시작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에는 사회주의 체제 강화를 위한 도서관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특히 1966년부터 10년 간의 문화혁명기에는 사회주의 이상에 반하는 자료들이 점검, 색출되었고, 도서관은 마르크르 사상에 의한 계급투쟁을 위해 봉사하는 도구로 변질되었다.
오늘날 중국은 문화부 아래 도서관국을 설치해 전국 도서관 관리지원체계를 구축하고, 1996년엔 북경에서 세계도서관대회를 개최하였으며 중국 현대회 계획에 따라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도서관서비스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AD 607sus 법륭사에 “학문소”를 설치해 자료보존소 역할을 수행했던 기록이 남아있으며, 700년에는 문무 천황이 ‘도서요’라는 문헌 생산 및 자료 보관을 위한 국가기구를 두었다. 당시 귀족들은 자신의 저택에 사설문고를 설립하는 경향이 있어, 이소노카미노 야카쓰구라는 귀족은 ‘예정’이라는 일본 최초의 사립공공도서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근세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일본 천하를 통일한 후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각종 문고들이 설치되었다. 도쿠가와 정부의 교육기관인 창평교에도 문고가 부설되어 학교도서관 기능을 하였는데, 1869년에 창평교를 동경대학교로 개칭하면서 창평고 부속 문고는 현 동경대도서관의 모태가 되었다.
1899년 도서관령이 공포된 무렵부터 공립도서관이 설립되기 시작하고 관련법령이 공포된 1918년 이후에는 수많은 학교도서관이 생겨났다. 1948년에는 제국도서관을 전신으로 한 국립국회도서관이 설립되었고, 1960년대 이후에는 민간 기업들이 연구개발비 투자를 늘리면서 기업체 도서관이 증가하였고, 일본 내 정보서비스 분야 전반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도서관 정책은 미군정청 학무국에 의해 소관되면서 미국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1945년 당시 부산부립도서관 등 14개의 공공도서관이 존재하였고, 6.25. 이전까지 38선 이남에 설립되어 있던 도서관은 공사립도서관을 합쳐 총 34개에 불과한 실정이었다.
해방된 다음날인 1945년 8월 16일에는 조선총독부의 한국인 직원들을 중심으로 박봉석, 이선영, 강춘수 3인 대표가 조선총독부 도서관을 접수하였고, 이후 박봉석을 위원장으로 하는 ‘도서관수호문헌수집위원회’를 조직하여 서울 시내 각 도서관을 순회하며 도서관을 접수하였다. 이후 1945년 10월 1일에는 조선총독부 도서관을 정식으로 인수받아 국립도서관이라는 간판이 걸리고, 미군정청이 관장에 이재욱, 부관장에 박봉석을 임명함으로써 국립도서관이 정식개관하게 되었다.
한국도서관협회가 법제정을 추진한지 8년 만인 1963년에는 도서관법이 제정되었으나 재정상의 이유로 시군구 단위 공공도서관 설립 등이 강제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 엄대섭은 마을문고를 통한 지식보급과 확산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였고, 농촌 주민들에게 책과 독서의 기회를 제공하고 독서회를 조직해 1974년에는 마을문고의 수가 35,011개에 달했다. 마을 문고는 새마을 운동과 결합하여 지식의 대중화라는 사회적 요구를 민간 주도로 반영한 독서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1980년대부터 공공도서관수는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1987년 개정 도서관법은 국공립도서관의 설치의무를 강화하고, 공립도서관의 운영재원을 지자체의 ‘일반회계’로 명시하는 등 공공도서관의 활성화의 촉매가 되었다.
한편 1980년대엔 엄대섭이 조직한 대한도서관연구회에서 ‘개가 및 관외대출 운동’, ‘입관료 폐지 운동’, ‘아동도서관 보급 운동’ 등 다시 도서관의 근대화를 도모하기 위한 다양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1980년대 중반 국립중앙도서관 분관, 서울시립정독도서관, 경기도립수원도서관 등이 개가제와 관외대출제를 채택하였고,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개가제, 관외대출제, 입관료 폐지(도서관 무료이용) 등이 전국적으로 현실화되었다.
1990년대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논리 속에서 도서관계에도 예산삭감과 인원감축 등 구조조정과 민영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아울러 주로 지자체 소속 도서관들을 중심으로 ‘사서직 관장 보임’을 회피(비사서직 고위관료의 도서관장 보임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서관을 ‘평생학습관’, ‘교육정보관’ 등으로 명칭 변경하려는 시도들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 테베의 신전 속 도서관 출입구에는 “영혼의 치유자”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하며, 독일 베를린 왕립도서관의 출입구에는 “영혼의 양식”이라는 문구가 있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오랜 세월 함께해 온 도서관은 이와같이 인간의 삶, 특히 정신적 삶을 돌보고 풍족하게 해주는 장소이다.
도서관을 의미하는 library는 도서를 Etm하는 라틴어 리베르(liber)에서 유래하였으며, 일반적으로 도서관이란 단어는 도서를 보관하는 장소를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수천 년 이어져 온 도서관의 정체성이 20세기 중반 이후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전자책, 전자저널 등 지식이 온라인으로 이용자에게 전송되는 가운데 급격한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다.
3. 느낀 점
인류 문명의 궤적과 함께 도서관의 역사를 살펴보면, 도서관이 단순한 지식의 저장소를 넘어 사회와 문화를 지탱하는 근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에서 시작된 기록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지식의 체계화로 발전했고, 수도원의 필사 문화와 근대의 인쇄 혁명은 지식 확산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또한 한국의 마을문고 운동처럼 지역과 시대에 따라 도서관은 언제나 ‘지식의 민주화’를 위한 실천적 장치였다. 흥미로운 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서관이 권력과 사상의 흐름 속에서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치유자”라는 본질적 가치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디지털 정보의 홍수 속에서 도서관은 더 이상 물리적 공간에 한정되지 않지만, 정보의 신뢰성·접근성·공공성을 보장하는 사회적 기관으로서의 책무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는 도서관이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 사회에서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지식 복지’의 핵심 인프라로 발전해야 함을 시사한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도서관 무료이용과 책이 개방된 서가에 꽂혀있어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개가제, 책을 집에 가져가서 볼 수 있는 대출제 등도 시대의 개혁가들, 앞선 세대의 민주시민들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도서관이 역사 속에서 뿐만 아니라 21세기에도 ‘영혼의 치유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 관심을 기울이고 가꿔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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